장애인 인권활동가로서 나의 착각, 혹은 오만
어쩌다 보니, 장애인 인권 운동에 몸을 담은 지, 벌써 20여년이다. 그래서 장애인 분야에선 나름 전문가라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장애인 인권 현장에 대한 이해는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옹호기관에서 일하면서부터, 이런 내 생각이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장애인의 현실이 무척이나 협소했음을, 여실하게 깨닫고 있다. 장애인 인권 분야에서 제법 긴 시간 활동했다지만, 옹호기관에서 접하는 사건들 중 일부는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종종 일어나는 장애인의 척박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사건, 하나
“선생님.... 저... 지금 울산에 있는 정신병원에 있어요...” 지적장애 2급 은비(가명)씨가 B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은 19살 때였다. 본래, 은비는 아동보호시설에서 살았다. 그런데 장애가 있었기에 비장애아동들에 의해 왕따를 당했다. 은비는 보호자가 없는, 무연고 발달장애아동이었다. 때문에 아동보호시설에서는 은비가 지낼 수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을 찾아 옮겨주었다.
A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은비는, 많은 발달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리하여 은비는 교사 한 명과 장애인 네 명이 생활하는 장애인공동그룹홈으로 다시 옮겼다. 처음에는 잘 지냈으나, 시간이 갈수록 은비는 같이 살던 장애인 언니들과 갈등이 적지 않았다. 교사는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교사도, 은비도, 같이 살던 언니들도 서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룹홈 교사는 은비를 다른 시설로 보내려고 알아보았다. 그러나 입소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룹홈 교사는 은비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비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며,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은비는 무연고자였기에 실질적 보호자는 교사였고, 은비 동의 없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일은 가능했다. 은비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한 채, 약 3개월간 어느 누구에게도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 이후, 운이 좋게도 장애인거주시설 선생님과 통화가 이루어졌고, 선생님의 노력으로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사건, 둘
“술이라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어서요...” 정문 앞에 쌓여 있는 술병을 보고 타박하니, 지적장애 3급 경식(가명)씨는 어색한 웃음을 보이면서 대답했다. 외출하지 않고 종일 집에 있는 날은 텔레비전을 종일 켜놓고,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낮은 괜찮은데 밤이면 이런저런 잡생각이 생겨나서,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잠든다고 말했다.
15년 넘게 고물상에서 일했던 경식씨는 대구의 아동보호시설 출신이었다. 만 18세가 되어 퇴소 해야하는 시점에 시설 원장이 양아버지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 사람을 따라 부산으로 왔다. 양아버지는 경식씨가 고물상에서 일해서 벌어온 돈을 부지런히(!)착취했고, 고된 육체노동을 잊기 위해 그는 매일 술을 마셨다. 이렇게 마신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알콜중독을 끊고자 정신병원에 6개월 입원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사건, 셋
“정신병원이 안전하고 편했어요.” 라고 웃으면서 말하던 희재(가명)씨는, 비장애인 수준의 경증 지적장애인이었다. 아동보호시설에서 퇴소 이후 희재씨는 아동보호시설에서 같이 살았던 비장애인들 친구들로부터 정착금 5백만원을 갈취당하고, 본인 명의로 대출까지 당했다. 그들로부터 종종 두들겨 맞기도 했다. 희재씨는 이들로부터 도망치고자,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했다.
본인을 괴롭혔던 비장애인 동기들이 법의 처벌을 받고, 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한 이후에야, 그는 부산으로 옮겨왔다. 지금은 어느 고시텔에서 살고 있는 중이다. 수급비와 장애수당 등 65여만을 받아 고시텔비와 통신비, 식비 등 필수생활비 정도는 감당할 수 있기에 그의 말을 빌자면, “지난날보다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다. 다만 범죄 피해로 인해 생긴 대출금을 여전히 갚지 못한 상황이다. 본인이 쓴 것은 아니나, 이 돈을 쓴 사람들로부터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여전히 본인 빚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부산지역 장애인 인구는 19년 12월 기준 175,378명이고, 발달장애인 숫자는 13,779명이다. 발달장애인 인구는 지난 10년 동안, 매년 평균 420여명 증가했다. 사건에 등장하는 발달장애인들의 공통점은 ‘무연고’라는 점, ‘정신병원’을 다녔다는 점, 마지막으로 ‘아동보호시설’ 출생이란 점, 세 가지이다. 발달장애인 인구 중 이러한 사건에 해당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이 몇 명인지 알 수 없다. 무연고 발달장애인 모두 정신병원을 간다거나 아동보호시설 출생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부모가 죽거나 보호자가 부재한 혹은 탈시설한 30~50대 무연고 발달장애인들도 체감상으로 적지 않다. 보호자가 있으나 연락 두절 된 상태의 무연고도 있다. 또한 부모가 있으나 발달장애 자녀를 보호해줄 수 없는, 부모 역시 발달장애인이라서 발달장애 자녀 인권침해 대응이 여의치 않은, 그런 점에서 실질적으론 무연고나 마찬가지 처지인 발달장애인도 있다.
이처럼 ‘실질적’인 무연고 발달장애인은 우리 주위에서 적잖이 존재한다. 그런데, 20여년을 장애인 인권 현장에 있었다는 나조차도, 지역사회 보호 부재 상황인 그들의 현실에 무지했는데, 일반 시민들은 이들 처지의 장애인 삶/현실에 대한 이해는 어떠했을까? 장애인 인권활동가라는 나의 착각과 오만함이 부끄럽다.
더 늦기 전에...
부산지역 무연고 발달장애인의 숫자가 어느 정도이며, 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파악 가능한 숫자는 부산지역 아동양육시설 21개소(1,101명) 중 15개소 총 56명의 실질적인 무연고 장애아동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 지적(중복)장애가 53명으로 거의 발달장애인이다. 게다가 아동시설에서 장애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지적 경계선의 아동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아동보호시설 퇴소 후, 즉 성인이 된 이후 최근 5년간 장애 판정을 받은 아동이 27명이었는데, 그 중 26명이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과연 이들 모두 어찌 살고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부산시는 무연고 발달장애인과 아울러 무연고인 다른 유형의 장애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들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복지관 등 지역사회 기관을 이용하여, 무연고 (발달)장애인 개인 상황에 따른 보호 및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부산시가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장애인 학대피해 사건은 대상이나 유형만 달리 할 뿐,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무연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산시의 전향적인 관심과 장애인복지기관/센터 등도 장애인 인권 실천 차원에서 무연고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요청드린다.
* 금년, 부산복지개발원의 요청으로 작성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