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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학대 사례 모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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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학대 사례 모둠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관리자 | 2021-06-29 | 121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오늘 나는 거기 (학대피해장애인쉼터) 안 갈꺼예요... ”


오늘, 쉼터에 가기로 했던 지적장애여성 은정씨(가명)는, 우리에게 설핏 짜증을 내면서 자신은 쉼터에 가지 않고, 현재 거주지에서 박 전도사님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세 차례 만났는데, 매번 수줍은 듯 말하는 그녀의 태도를 생각하면, 다소 의외였습니다. 


박 전도사가 은정씨를 본인 집으로 데려온 것은 약 6년 전이었습니다. 원래, 전남 나주가 고향이었던 은정씨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양산에 있는 비인가시설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양산의 시설장이 박 전도사에게 은정씨와 또 다른 지적장애여성인 미주씨(가명)를 맡겼고, 그 때부터 부산 박 전도사네 집에서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부산 박 전도사네 집은 일반 가정 주택이었고, 1층은 그녀들이, 2층은 박 전도사네 가족이 살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수급권자였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나오는 수급비는 박 전도사가 관리했습니다. 


두 사람의 삶은, 어느 의미에서는 평온했습니다. 1주일에 2~3차례 인근 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 주말에는 교회를 다니는 등 정해진 일과 안에서 그녀들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할 필요 없는, 정해주고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녀들이 다니던 주간보호센터나 교회, 혹은 그녀들의 일상을 지원해주던 활동지원사 등은 지적장애여성 2명을 돌보던 박 전도사의 노고를 늘 칭찬했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박 전도사의 모습은 피붙이도 아닌 생판 남이었던 지적장애여성 2명을 본인 집에 데리고 와서 돌봐주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들이 살고 있는 집에 매주 1회 반찬 지원을 해주던 인근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로부터 옹호기관에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미주씨의 손 등을 보니 매로 맞은 듯한 폭행 흔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은정씨의 경우, 의사소통이 매우 원활한 수준의 경증지적장애여성이었으나, 미주씨는 의사소통이 여의치 않은 중증장애여성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일상의 지시어 정도는 이해하나 어떤 상황에 대한 설명은 어려운 정도였고, 다만 질문에 대한 ‘네, 아니오’ 정도만 할 수 있었습니다.) 


옹호기관에서는 신고자의 말대로 박 전도사에 의한 폭행 가능성을 높이 보고, 일단 주간보호센터로 찾아가서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미주씨는 전도사로부터 몇 차례 맞았음을 일관되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것은 은정씨의 태도였습니다. 


처음 우리를 만난 은정씨는 경계를 하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도 대답을 하지 않는 등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타진하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이후에야 은정씨는 긴장을 풀고 자신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찬찬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미주씨의 대답처럼 박 전도사가 미주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효자손으로 손 등을 때린 것이 맞으며, 자주 때리지는 않으나, 한 번씩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매일 저녁과 주말마다 2층 박 전도사네 집까지 본인이 걸레로 닦고 쓸고 하며, 빨래 등 집 안의 가사살림을 온전히 자신이 하고 있다는 점 역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은 자신들에게 국가로부터 돈이 얼마나 나오고 있으며,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실, 은정씨와 미주씨의 처지를 고려하면, 이들이 이렇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은정씨는 전남 나주에 작은 아버지가 살고 있다고 하나, 직접적으로는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무연고 처지였습니다. 미주씨 역시 부산에 어머니가 살고 있으나, 1년에 1~2번 정도 만나는 정도의 사실상 무연고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정씨와 미주씨의 보호자는 실질적으로 박 전도사였고, 박 전도사가 시키는 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현재와는 다른 공간에서 살고 싶은 의향이 있는지, 그리고 나간 이후, 두 사람이 같이 살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은정씨는 다른 공간에서 살 의향을 밝혔고, 본인보다 일상 수행 능력이 무척 미흡한 미주씨를 데리고 같이 살고자 했습니다. 사실 은정씨는 어디를 가더라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문제 없는 정도의 장애였습니다. 하지만, 미주씨는 박 전도사의 집에서 나간다고 할 때,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처지였는지라, 저희들로서는 무척 고민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은정씨가 미주씨와 함께 산다고 하니, 저희들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박 전도사에 대한 조사와 두 사람의 거주지 분리였습니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분리 과정에서 (행위자의 강압 등에 의해) 본인의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우선 은정씨와 미주씨를 쉼터에 직접 데리고 가서, 자신들이 앞으로 살 공간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쉼터 공간에 큰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다만 숙제가 하나 있었는데, 은정씨와 미주씨는 분리되어 살더라도 박 전도사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살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박 전도사와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6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동거했음을 고려하면, 헤어지는 마당에 아쉬움이 없을 리 없습니다. 두 사람으로서는 박 전도사가 본인들을 돌봐주었다는 점을 알고 있으니, 연락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의사를 표현한 것일 터입니다. 문제는 박 전도사의 입장입니다. 


박 전도사 입장으로서는 두 사람의 분리가 너무나 갑작스럽고, 또한 분리 이유가 어쨌든 간에 ‘학대 행위’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불쾌하고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언급한 미주씨에 대한 신체적 학대와 은정씨로 하여금 원치 않는 가사 노동을 시킨 일도 있고, 무엇보다 두 사람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 사용 내역을 확인한 결과, 두 사람의 살림에 쓴 것보다 오히려 박 전도사네 살림에 쓴 내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가령 두 사람은 전혀 읽지도 않는 신문 대금을 두 사람의 수급비로 쓰거나, 식료품비도 두 사람이 먹는 것도 있었지만 박 전도사 가족이 먹는 양도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실제 조사 과정에서 박 전도사에게 해당 사항을 질의하니, 자기 가족들이 먹는 것이 있음을 스스로 실토하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두 사람 앞으로 나온 국가 수급비로 박 전도사네 살림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은정씨는 한 달 75만원, 미주씨는 한 달 115만원 해서 약 190만원 정도 수입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실제 쓰인 돈은 넉넉하게 감안해도, 사실 100만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박 전도사의 행위는 경제적 착취에 해당하는 장애인 학대 행위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드러날 경우, 대부분 박 전도사 처지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거나 성찰하기보다 본인들의 억울함을 항변하면서, ‘내가 너희들을 돌보는데 그간 얼마나 어려움이 있었는데....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저희들과 장애인을 격렬하게 비난합니다. 때문에 설령 장애인이 연락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본인들을 거부하며, 연락을 단절합니다. 


이런 장면을 곧잘 목격했던 우리들로서는 은정씨와 미주씨 바람대로 과연 박 전도사와 헤어지더라도 이후 연락이 가능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정씨와 미주씨 바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박 전도사에 대한 조사와 주거 분리는 최대한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사 및 분리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던 당일, 박 전도사의 집으로 갔는데, 저처럼 학대피해자로부터 분리 퇴짜를 맞은 것입니다. 


원래 박 전도사 조사 및 거주지 분리 당일은, 두 사람이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박 전도사를 조사하러 가면서 센터에 두 사람이 왔는지 물어보았는데, 센터에 오지 않았다는 답변을 듣고, 불안한 마음이 적지 않았습니다. 보통 박 전도사와 같은 처지에 내몰리면 해당 발달장애인에게 갖은 말을 해서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박 전도사 집에 도착해서 그녀들이 거주하는 1층으로 가 보니 은정씨와 미주씨는 불안한 태도가 역력하였고, 자신들은 절대 쉼터에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전도사님이 말했는데, 이 곳에 나가게 되면 다시는 자기를 보지 못할 것이고, 은정씨와 미주씨 둘 다 양산에 있는 시설장님도 못 만날 것이고, 특히 미주씨는 엄마도 만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도, 박 전도사가 며칠 동안 은정씨와 미주씨에게 엄청 겁을 주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서 우리는 두 사람에게 우리 만난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장애가 중증이었던 미주씨가 얘기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두 사람과 대화를 지속하면서, 2층에 있는 박 전도사를 조사하러 갔습니다. 물론 박 전도사는 우리와의 조사에서 자신은 은정과 미주에게 저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전혀 없다고 딱 잡아떼었습니다. 게다가 박 전도사는 미주씨 어머니를 불러서 동석시켜놓고, 만약 미주씨가 이 곳을 나가게 된다면 쉼터에 가지 않고, 미주씨 어머니 집으로 데리고 가도록 하겠다는, 어이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은정씨는 전남 나주에 있는 작은 아버지네 집으로 보내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박 전도사 얘기는 법적으로 아무 소용 없습니다. 만 18세 이상의 경우, 발달장애인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후견인을 선정하지 않는 이상, 본인 결정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설령 부모라 하더라도 강제로 끌고 갈 순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주씨 엄마가 미주씨를 데리고 간다고 말하더라도 미주씨가 안 가겠다고 말한다면,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은정씨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이 쉼터로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두 사람을 불러다가 박 전도사와 같이 얘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희들은 은정씨와 미주씨에게 ‘박 전도사님은 두 사람이 나가는 것을 아무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이 나가는 것에 대해 적극 동의한다. 그러니, 오늘이 꼭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나갈 수 있으니, 우리에게 연락해라’고 못 박아두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박 전도사가 막돼먹은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박 전도사는 본인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청소 등을 시켰으며 수급비 사용도 본인이 임의로 쓴 사실 등을 선선히 인정하는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를 얼마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내가 이 두 사람을 키우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있었고, 이를 왜 몰라주는가에 대한 항변도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우려했던 수준까지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은정씨와 미주씨가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제가 박 전도사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박 전도사가 막 돼먹은 사람이었다면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 은정씨와 미주씨를 부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함께 이러한 이야기를 약 30분 넘게 나눈 이후부터는 처음에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었던 은정씨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미주씨도 쉼터에 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슬쩍 비추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주씨의 엄마도 우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처음과 달리 쉼터에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미주씨 엄마도 박 전도사가 얼마나 거짓부렁을 해대었는지, 처음에는 우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대화 마지막에 이르러서 은정씨가 설핏 웃으며, “거기에 가면 밥은 줘요?” 라고 물었고, 이 질문에 우리는 모두 빵 하고 웃었습니다. 도대체 박 전도사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밥만 주는 게 아니라 커피와 과일도 주며, 이 곳에 없는 핸드폰도 개통할 수 있다’는 말로 그 자리를 매듭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은정씨와 미주씨에게 지금 이 곳을 떠나 쉼터에 갈 수 있다는 말을 건넬까도 싶었지만, 좋지 않게 헤어질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묻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을 볼 때, 조만간 우리 측에 연락오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아마도, 멀지 않은 시간에 은정씨와 미주씨는 삶의 거처를 쉼터로 옮기지 않을까 라고, 저는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별도로 삶의 거주지를 쉼터를 옮겼을 때, 그 이후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도, 적지 않습니다. 쉼터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6개월이고, 6개월 전까지 이들이 살 수 있는 거처를 구해야만 합니다. 거처야 이래저래 구할 수 있다지만, 쉼터에서 나오는 순간 이들은 매사 모든 것을 자신들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쉼터 이후의 삶은 박 전도사와 같이 살 때럼 누군가가 이들의 삶을 책임지고 보호해줄 순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삶에 보조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후견인이나 활동지원사를 배치할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본인들의 삶의 방식은, 누군가가 돌봐주었던 지금까지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은정씨와 미주씨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지난날보다 좀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없진 않습니다.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하나, 그에 따르는 대가 앞에서 이들이 느낄 법한 곤혹감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편으론 학대피해장애인 사후지원 업무를 하는, 저희 활동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현재 장애인의 삶이 문제(학대)라고 판단하여 개입해서 분리하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옹호기관)의 역할이자 책임입니다. 그런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그 이들의 삶에서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것인가, 즉, 과거보다 좀 더 나은 삶의 모습이다 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 앞에 선선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는, 사례들이 종종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그나마 지금 장애인의 삶보다 좀 더 낫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 앞에, 우리들은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은정씨와 미주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만간, 분리해야 하는 날이 올 때,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지금보다 좀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를, 좀 더 궁리해보아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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